사회공헌

[르포] 흙으로 덮고 발로 다지고…한국-몽골 함께 만든 ‘대한항공 숲’
2024.06.05 페이스북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트위터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링크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대한항공 숲에 가기 위해 울란바타르 칭기즈칸 신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2시간을 넘게 달렸다. 드넓은 초원과 낮은 산이 구불구불 이어졌다. 초원에는 발목까지 올법한 낮은 풀들이 깔려 있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망아지들이 엄마, 아빠 옆에 딱 붙어 종종거리며 뛰어다녔다. 야생에 가까워 보이는 소와 양들이 울타리 없는 곳에서 한가로이 지냈다. 고개를 숙여 풀을 먹었다. 몽골의 낮은 산도 초원과 비슷하게 생겼다. 우리나라 산처럼 잘 자란 나무들이 빽빽이 자리잡은 모습이 아니었다. 강수량이 1년에 300~400㎜ 정도로 비가 적게 오는 지역인 만큼 나무가 자라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한다. 바위산과 민둥산이 눈에 띄었다. 강줄기는 쉬이 찾아볼 수 없었다.

몽골 초원과 낮은 산 말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다
몽골 초원과 낮은 산. 말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다

숲에 가까워지자 차창 밖 멀리 석탄 광산이 보였다. 몽골에서 두 손가락 안에 드는 큰 탄광이라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더 광활했다. 숲에 도착할 때까지 달 표면 같은 탄광 광경이 한동안 이어졌다. 이곳에서 몽골 전체 석탄 수요의 60% 가량을 공급한다. 지표면에 석탄이 드러나 있는 노천(露天) 광산이어서 석탄 가루와 먼지가 근처 마을로 날린다고 한다. 대한항공이 탄광 근처에 숲을 조성하기로 한 것도 인근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구글맵으로 ‘바가노르구 대한항공 숲’을 찾아보니 마을 입구를 지켜주는 길쭉한 숲의 형태를 볼 수 있었다. 방풍림 역할이 가장 중요한 숲이었고, 사막화 방지에도 도움을 주었다. 몽골 현지 인솔자는 거듭 감사를 표했다. “멋지고 귀한 일 하러 오신 대한항공 임직원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바가노르구 탄광과 대한항공 숲을 구글맵 위성지도로 본 모습
노란색 동그라미 부분이 거대한 바가노르구 탄광이다. 그 위쪽으로 길쭉한 형태의 대한항공 숲이 탄광 분진과 먼지로부터 마을을 지켜주고 있다 (출처 : 구글맵)

버스에서 내리기 전 주의 사항과 당부의 말을 들었다.

“이곳은 고지대입니다. 자외선 차단제 안 바르고 모자 안 쓰고 다니다 보면 내일 저처럼 됩니다.(웃음) 더 심하면 여기 유목민들처럼 피부가 빨갛게 될 겁니다.”

한국어가 유창한 몽골 현지 인솔자의 갑작스러운 자기 고백(?)에 모두 웃음을 빵 터뜨렸다. 이런 농담을 여기에서도 쓰다니. 역시 웃음엔 국경이 없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 안전을 위해 모자와 작업 조끼, 보안경, 장갑을 챙겼다. 드디어 대한항공 숲에 도착했다. 팻말은 얼마 전 다시 칠한 듯 반짝거리는 얼굴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바가노르 대한항공 숲 팻말
‘바가노르 대한항공 숲’ 입구에 세워진 팻말. 한국과 몽골 양국이 정성스레 가꿔 온 숲이다

우리에게 부여된 임무는 크게 2가지였다. 하나는 가지치기, 하나는 나무심기다. 가지치기도 심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작업이었다. 가지를 제대로 쳐주지 않으면 나무가 크고 높이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숲을 관리하는 현지 주민이 능숙한 손놀림으로 시범을 보여주었다. 일정 높이 아래에 있는 나뭇가지와 잎을 모두 잘랐다. 뿌리에서 흡수한 영양분이 나무 끝까지 도달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래야 나무가 높게 자라 방풍림으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해낼 수 있다고 한다.

가지치기 시범을 보이는 현지 주민
가지치기 시범을 보이는 현지 주민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기 전 다치지 않도록 준비 운동을 하는 모습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기 전 다치지 않도록 준비 운동을 했다

가느다란 가지는 경쾌하게 잘렸지만 두꺼운 가지는 자를 때 많은 힘을 들여야 했다. 나뭇가지를 잘라낸 자리에 연둣빛으로 드러난 단면이 낯설었다. 하지만 곧 익숙해져 가지치기에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매우 두꺼운 가지를 자를 때는 한 사람이 나뭇가지를 잡고 다른 한 사람이 도구를 쓰는 협업도 필요했다. 잘라낸 가지는 한 곳에 모아 수거했다. 발 디딜 틈 없어 보였던 숲이 말끔해진 모습을 보니 뿌듯했다. 나무를 심는 것만 중요한 줄 알았는데, 숲을 건강하고 울창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꾸준히 가꾸고 관리하는 일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전정가위로 나뭇가지를 자르는 모습
지급받은 전정 가위로 가지를 자르는 모습. 두꺼운 가지를 자를 땐 많은 힘이 필요했다

진지하게 가지치기에 임하는 대한항공 직원의 모습
진지하게 가지치기에 임하는 모습

가지치기를 마친 대한항공 숲의 모습
가지치기를 마친 숲. 사진 속 나무는 대한항공 숲의 70%를 차지하는 포플러 나무다

두 번째 임무는 나무심기였다. 우리가 이날 심은 나무는 포플러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고 탄소를 포집하는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어 몽골 방풍림에 심기에 딱 맞는 수종이다. 나무를 심을 때는 바가노르구 현지 학생들이 손을 보탰다. 4~5명이 한 조를 이뤄 한 그루 한 그루 정성껏 심었다. 50~60㎝ 깊이의 구덩이에 포플러 묘목을 세우고 주변을 흙으로 덮었다. 발로 흙을 꾹꾹 누른 뒤 철제 양동이에 물을 가득 담아 4차례 부었다.

묘목을 심고 물을 주는 모습
손가락보다 가느다란 어린 나무를 심었다. 깊이 판 구덩이 중앙에 묘목을 놓은 뒤 흙을 덮고 물을 줬다

처음에는 물을 너무 많이 주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몇 분 새 그 많던 물이 모두 땅 속으로 흡수되는 것을 보니 더 줘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물이 잘 빠져나가는 토질에서 사람 키의 6배가 넘는 높이로 나무를 키웠다니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대한항공 숲 한편에 심은 나무는 총 250그루다. 잘 자라길.

대한항공 숲에 새로운 나무를 심는 모습
대한항공 숲에 새로운 나무를 심는 모습

심은 묘목에 물을 주는 모습
“나무야 잘 자라라~”

대한항공 숲도 처음부터 이렇게 울창한 것은 아니었다. 축산업이 주요 삶의 형태인 몽골의 특성상 숲보다는 가축을 먹일 초원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인근 마을 주민들 역시 초반에는 숲을 조성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그들이 키우는 가축을 우선 먹이고자 숲을 찾았다. 염소는 식물의 뿌리까지 모두 뜯어먹는 특성이 있는데, 그 바람에 기껏 심어둔 어린 나무가 말 그대로 ‘뿌리째’ 뽑히기도 했다. 대한항공과 현지 숲 조성 관계자들은 이들을 설득하고 식림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했다. 나무를 심은 뒤 꾸준히 관리하기 위해서는 현지 마을 주민들의 도움도 필요했다. 수많은 노력 끝에 주민들은 나무를 심고 관리하는 법을 배웠다. 지금은 숲 관리의 베테랑이 됐다.

마르고 건조한 숲에 불이 나 복원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어렵게 관리를 이어오다 대한항공이 2019년 점적관수시스템을 구비하고 나서야 나무들이 안정적으로 자랄 수 있는 환경을 갖췄다. 현재 50t 크기의 커다란 물탱크 2대와 펌프 8개, 관정(우물) 4개가 설치돼 있다. 지하수와 연결된 이 설비들이 자동으로 나무에 물을 주고, 숲에서 물을 구하기도 용이해졌다. 곳곳에 진화 설비를 갖춰 불이 나더라도 신속하게 진압할 수 있게 됐다. 대한항공 직원들과 현지인들은 이 물탱크를 ‘비행기’라고 부른다. 그만큼 귀한 시설이라는 뜻이 아닐까.

안정적인 물 공급을 가능하게 해주는 물 탱크 앞에서 대한항공 직원들이 사진을 찍는 모습
숲 성장의 ‘일등 공신’ 물 탱크 앞에서 한 컷

나무를 다 심고 나서 현지 몽골 학생들과 음료수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우리나라로 치면 중학생~고등학생 나이대의 바가노르구 지역 학생들이다. 같이 흙을 묻히고 몸을 쓰는 노동을 한 이후라 한층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센베노(안녕하세요)”, “세노~(안녕)” 오는 길에 배운 몽골어로 인사를 했다. 간단히 자신을 소개하고 각자의 꿈을 얘기했다. 승무원과 기장이 되고 싶다는 친구들이 있었다. 광산 엔지니어, 패션 디자이너, 경제학자가 되고 싶다는 학생도 있었고, 아직 꿈을 정하지 못해서 열심히 찾아보고 있다며 수줍어하는 친구도 있었다. 모두 응원의 박수를 쳤다. 구글 번역기로 한국어와 몽골어를 넘나들며 대화를 나눴다.

나무를 함께 심은 몽골 학생들과 찍은 사진
나무 같이 심은 몽골 학생들과 함께 한 컷. 몽골 학생들 사이에서 많이 쓴다는 “유 벤, 하마”라는 말도 배웠다. 영어로 하면 “A Yo, Bro”라는 뜻이라고 한다

대한항공 숲에는 현지 주민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숲을 들어서자마자 농구 골대가 서 있었고, 그 맞은편에는 어린 아이들이 흙장난을 하던 놀잇감들이 놓여 있었다. 아기 그네도 설치돼 있었다. 단순히 환경적인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 주민들이 쉼터와 놀이터로 활용한다고 하니 부쩍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대한항공 임직원 뿐만 아니라 현지 주민들도 이 숲에 애정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마음이 푸근해졌다.

대한항공 숲에서 발견한 현지 아이들 놀이 흔적
현지 아이들이 놀이했던 흔적. 작은 모래사장에서 장난감과 인형을 갖고 놀았을 모습을 상상하니 귀엽다

대한항공 숲 입구에 설치된 농구 골대
대한항공 숲 입구에 설치된 농구 골대. 이날 이곳에서 공놀이 하는 현지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대한항공 숲속에 마련된 간이 화장실
급할 때 찾아갈 수 있는 숲 속 간이 화장실. 주황색 깃발 너머로 ‘WC’라는 글씨가 보인다

이번 식림 활동에 참가한 한 직원은 몽골에 조성한 숲을 ‘따뜻한 손길’이라고 표현했다.

‘대한항공 숲’이라는 따뜻한 손길은 지금까지 만 20년을 이어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대한항공 숲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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