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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기 기획②] 故 조양호 선대회장 1주기… 아직도 스포츠계에 지워지지 않는 발자취
2020.04.10 페이스북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트위터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링크 공유하기 버튼 이미지

4월 8일 故 조양호 한진그룹 선대회장이 세상과 이별한지 1년째 되는 날이다. 1년이란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스포츠계에는 ‘조양호’라는 이름이 주는 깊은 울림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고 있다.

조 선대회장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2018평창동계올림픽이다. 조 선대회장은 국가적인 대사였던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위원장과 조직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역사에 길이 남을 성공적 동계올림픽을 치뤄내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뿐만 아니라 조 선대회장은 생전 우리나라 스포츠 발전을 위한 고민을 끊임없이 해왔다. 단순히 현재의 스포츠 발전을 넘어 향후 어떻게 스포츠가 경쟁력을 제대로 갖출 수 있을지 시스템적으로 살폈다. 또한 스포츠인들의 미래까지 살뜰히 챙겼다.

대한탁구협회 회장, 아시아탁구연합(ATTU) 부회장, 대한체육회 부회장, 피스 앤 스포츠(Peace and Sport) 대사 등 스포츠와 관련된 국내·외 주요 직책을 도맡으면서 스포츠 발전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

조 선대회장의 스포츠에 대한 진정성 있는 고민은 단순히 본인이 맡은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대한민국 전반적인 스포츠 인프라, 경쟁력 강화방안, 스포츠를 통한 세계 평화 기여, 비인기 스포츠에 대한 지원 등 스펙트럼도 넓다. 한국 체육계에서도 조 회장만큼 한국 스포츠 발전을 위해 진정성 있는 고민을 해온 인물도 드물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 ‘국민의 심부름꾼이라는 소명의식’… 평창의 동계올림픽을 현실로

2009년 9월 1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창립총회’에서 조 선대회장은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국가적 대업에 심부름꾼 역할을 해야겠다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유치위원장을 맡았다”고 소감을 밝힌다. 선친인 조중훈 창업주로부터 배운 소명의식, 그리고 스포츠를 통한 국가에 대한 헌신과 열정이라는 DNA가 조양호 선대회장이 유치위원장을 수락하게 된 결정적 이유였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프레젠테이션_ 스위스 로잔
2011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프레젠테이션_ 스위스 로잔

조 선대회장은 국가에 대한 봉사 정신, 스포츠에 대한 열정을 바탕으로 유치위원장 취임 이후 2년간 34개의 해외 행사, 50번에 걸친 해외 출장을 소화하며 평창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유치하고자 노력했다. 이동한 거리만 해도 64만㎞, 지구 16바퀴에 달한다.

조 선대회장은 세련된 비즈니스 마인드와 글로벌 항공사를 경영하면서 얻은 다양한 인맥을 활용해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발걸음을 재촉했다. 정치인이나 스포츠인들이 생각할 수 없던 조양호 회장의 비즈니스적 감각, 그리고 폭넓은 인맥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의 결정적 요소가 됐다. 

조 선대회장은 유치 이후에도 평창동계올림픽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유치를 끝으로 잠시 본업으로 돌아간 조양호 선대회장은 IOC의 스케줄대로 올림픽 준비가 이뤄지지 않자, 정부로부터 다시 한번 요청을 받고 소명의식 아래 조직위원장직을 수락했다.

조양호 회장은 무엇보다도 먼저 조직을 정비해 올림픽 준비를 본 궤도에 올려놓았다. 또한 경기장 등 베뉴(Venue) 건설에도 본격적으로 박차를 가하며,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올림픽 행사의 전초전인 2016 알파인 월드컵 테스트 이벤트 성공적으로 성사시키는 등 올림픽 준비를 본 궤도에 올렸다. 이와 같은 과정 속에서 IOC 조정위원회의와 긴밀히 소통하며 상호 신뢰를 위한 기반을 구축했고, 궁극적으로는 평창이 성공적으로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다는 믿음까지 심어줄 수 있게 됐다.

조직위원장직을 내려 놓은 이후에도 조양호 선대회장의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한 열정과 관심은 이어졌다. 조직위원회에 수십 명의 한진그룹 직원을 파견하고, 김포-양양 간 내항기를 운영해 올림픽 패밀리들을 위한 교통 편의도 제공했다. 또한 광화문 세종대로 구간의 봉송주자로 성화를 봉송하기도 했다. 평창동계올림픽 기간에는 틈틈이 경기장을 찾아 선수들을 응원하며 대한민국의 첫 동계올림픽을 묵묵히 지원했다.

서울하계올림픽에 이어 30년만에 대한민국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의 성화가 꺼지고, 평화와 화합을 통해 동계올림픽의 새로운 지평(New Horizon)을 열었다는 전 세계와 외신의 극찬이 이어졌다. 마지막 시점에 조 선대회장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그의 헌신은 잊혀지지 않았다.  토마스 바흐(Thomas Bach)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조 선대회장의 타계 직후 성명을 통해 “전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인 조양호 회장의 타계 소식을 접하게 돼 IOC는 매우 비통하다”며 “평창 조직위원장으로 재임 기간 고인의 헌신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추도했다.

■ 대한민국 스포츠 위한 투자 강조… 아마추어 스포츠 활성화 방안도 고민

조 선대회장은 평소 우리나라 스포츠 발전을 위해서는 ‘사람’에게 더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젊은 피’가 필요하며, 유럽과 같이 체육인 출신의 젊은 선수위원층이 대폭 확대 돼야 한다고도 역설했다.

2008 불우이웃돕기 자선탁구대회(인천계양체육관)
2008 불우이웃돕기 자선탁구대회(인천계양체육관)

이를 위해 조 선대회장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현정화 前 국가대표 감독에게 ‘스포츠 국제 행정가’가 될 것을 조언한 것이다. 당시 현 전 감독은 국제탁구연맹 총회에서 미디어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된 이후 탁구 국제 행정가의 길을 걷겠다는 큰 꿈을 가졌다. 하지만 국제대회에서 심판진, 운영진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영어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던 상황이었다. 조 선대회장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자신이 재단 이사로 있는 美 남가주 대학(USC) 총장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한국의 유능한 스포츠 인재가 미래 지도자로 성장하는데 필요한 맞춤형 코스를 추천해달라고 요청하고, 향후 현 전 감독이 어학연수 후에 국제 스포츠 행정가로서의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유학을 지속할 경우 이 또한 뒷받침할 것을 지시했다.

유승민 현 IOC 선수위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유승민 위원이 IOC 선수위원으로 선정되는 과정에서도 조 선대회장은 큰 역할을 했던 것. 

당시 IOC 선수위원 출마를 결심한 유승민 위원에게 조 선대회장은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유승민 위원의 꿈을 지지했다. 이미 유승민 위원이 선수 은퇴 직후 美 남가주 대학 유학을 제안했던 조 선대회장은, 후발주자로 출발한 유승민 위원을 IOC 선수위원으로 만들기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했다. 특히 친분이 있는 IOC 위원들에게 유승민 위원을 적극 추천하는 한편, 평창 프리젠테이션 팀을 소개하며 영어 면접을 도왔다. 결국 유승민 위원은 면접에서 최고점을 받으며 IOC 선수위원이라는 꿈을 이룰 수 있었고, 스포츠 부문의 국제적 발언권도 얻게 되며 대한민국 스포츠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또한 조 선대회장은 국제 스포츠계에서 활동할 체육 전문인 육성을 위해 장기적 프로젝트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다. 이를 위해 조 선대회장은 2013년 국내 스포츠 담당 언론인들을 미국 L.A.에 초청해 남가주 대학 내의 존 맥케이 센터(John Mckay Center) 견학의 기회를 갖도록 했다.

존 맥케이 센터는 2012년 8월 개관된 남가주 대학교 내에 스포츠 종합 전문시설로, 남가주대학 내 스포츠팀 학생 및 선수들에게 운동, 학습, 전략연구를 비롯해 체력단련까지 가능한 최첨단 스포츠시설이다. 또한 선수들을 위한 전용 훈련장, 실내경기장, 학습공간, 경기전략 연구공간, 최선 컴퓨터시설 등이 완비되어 있다.

조 선대회장이 특별히 국내 스포츠 담당 기자들을 초청해 존 맥케이 센터를 견학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바로 국내 아마추어 및 학교 스포츠 교육 발전의 기회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국내 아마추어 및 학교 스포츠는 철저히 운동에만 집중하고 있는 체제로, 육체적인 성장 폭만큼 전략적인 측면의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 또한 스포츠 선수들에게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고 있어 개인적인 성장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국내 스포츠의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언론인들이 선진국의 스포츠 발전 전략의 메카를 둘러보게 함으로써, 국내 아마추어 및 학교 스포츠의 미래와 향후 국내 스포츠의 진정한 발전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조 선대회장의 사려 깊은 배려의 차원이었던 것이다.

■ 탁구계 내홍 정상화부터 비인기종목, 동계스포츠 활성화… 그리고 평화 모드 조성까지

조 선대회장은 2008년 대한탁구협회 회장을 맡아 지난 10여 년간 한국 탁구의 발전을 이끌어왔다. 2009년부터는 아시아탁구연맹(ATTU) 부회장에도 선임되어 국제무대에서의 한국탁구 위상도 재정립했다.

지난 2013년 1월 국내 탁구계가 18년만에 처음 만장일치로 대한탁구협회장으로 조 선대회장의 연임을 확정했던 것도, 조 선대회장에 대한 탁구계의 굳건한 믿음과 신뢰 때문이었다. 조 선대회장은 2008년 7월 처음으로 대한탁구협회장에 취임할 당시 내부 문제로 내홍을 겪고 있던 탁구협회를 빠른 시일 내에 정상화시키면서 탁월한 리더십을 보였다.

2014 탁구 대표단 격려
2014 탁구 대표단 격려

조 선대회장은 대한탁구협회장 취임 후 선수 육성 지원, 심판 및 지도자 양성 등 제도 개선으로 한국 탁구 발전 전기를 마련했고, 아시아탁구연합 부회장으로 선임된 후 중국, 러시아, 스웨덴 등과 탁구 교류 활성화에 힘썼다. 뿐만 아니라 탁구인들의 화합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 한국 탁구의 국제 위상을 한껏 드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조 선대회장은 인종·종교·사회적 편견 등을 초월해 순수한 스포츠를 바탕으로 세계 평화 증진을 위한 활동을 하는 국제기구인 ‘피스 앤 스포츠’ 대사를 역임하면서 국제 스포츠 및 이를 기반으로 한 세계 평화 정착 활동에 힘을 실어왔다. 특히 조 선대회장은 ‘피스 앤 스포츠’ 대사로서 2011년 11월 카타르에서 분쟁 국가 중심으로 10개국이 참여해 다른 국가의 선수와 팀을 이뤄 탁구경기를 치르는 ‘2011 카타르 피스 앤 스포츠 탁구컵’을 후원해 20년만에 남북한이 탁구 단일팀을 이뤄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2018년에도 조 선대회장은 국제탁구연맹(ITTF)과의 공조를 바탕으로 남북단일팀을 추진하고, 사상최초로 2020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부산에 유치하는 데도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특히 남북단일팀 구성은 남북간 평화 모드에 큰 기여를 했다.

조 선대회장이 대한탁구협회장으로 재직하는 11년 동안 협회에 낸 지원금은 110여억원에 달한다.

조 선대회장의 관심사는 비단 탁구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조 선대회장은 자금력을 갖춘 기업들이 비인기 스포츠 종목 후원을 해야만 한국 스포츠가 고루 발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반적은 한국 스포츠 경쟁력이 꽃필 수 있다고 믿었다. 이 같은 조 선대회장의 의지에 따라 대한항공은 남자 프로배구단 ‘대한항공 점보스’와 실업 여자탁구단, 스피스 스케이팅 실업팀을 운영하고 있다.

■ 스포츠인들의 미래를 위한 따뜻한 배려도 아끼지 않아

조 선대회장의 평소 지론은 “운동선수들도 평소에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회사원의 은퇴가 50~60대인 반면, 운동선수들이 은퇴 시점은 30대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조 선대회장은 스포츠인들이 은퇴 후 삶을 제대로 영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오로지 스포츠 한 길만 보고 걷던 선수들이 은퇴 후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다면, 스포츠계에 뛰어들 인재 풀이 좁아지고 결국 대한민국 스포츠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인식의 발로였다.

조 선대회장은 대한탁구협회장 시절 협회 차원에서 국내·외 대회의 메달리스트와 국가대표 선수들이 은퇴 이후에도 탁구를 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향후 진로를 배려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는 한국 스포츠 발전을 위해 매진해 온 스포츠 인사들을 위한 조 선대회장의 배려이자, 향후 한국 스포츠가 국제 사회에서 위상을 높여갈 수 있는 초석이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세심한 마음이었다.

대한항공에서 운영하는 스포츠단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비 시즌에 선수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영어교육, 컴퓨터 교육 프로그램 등을 만드는 한편, 해외를 방문할 수 있도록 해 삶의 견문을 넓혀주는 기회도 만들었다.